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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방에선 무슨 일이!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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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방에선 무슨 일이! - 3부


제3편 #2 친절한 희정씨 


'어서 오세요. 두 분인가요?'


대개의 민속주점이 전혀 민속적이지 못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에 비하여 사장님이 인테리어 쪽에 관심을 좀 많이 쏟으신 듯 아담한 냄새와 함께 조용히 귓속을 파고드는 가야금 소리가 이런저런 세상이기 나누며 술 한잔 기울이기에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네. 어디 앉을까요?? '


'아. 마침, 사랑채가 비었는데 그쪽으로 드릴까요??'


잉?? 사랑채라니. 조선시대도 아니고 어딜 말하는 건지.


희정이 누나한테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기 위해 뒤를 봤더니 가게 구석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열심히 전화하고 있더군요. 전화하고 있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그냥 아무 때나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사장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 봤습니다.


<인연을 기다리는 사랑방>


누구 솜씨인지 멋들어지게 붓글씨로 쓰인 서판이 붙어있는 3~4명 들어갈 만한 방이었습니다.


'응? 여기도 방이 있네?? 비디오도 틀어주는가??'


'어떤 거로 드릴까요??' 


주인의 물음에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소주 한잔하자는 희정이 누나의 말과 민속주점에서 막걸리 맛은 한번 봐야 한다는 생각에 '소주 한 병 막걸리 한 개랑 오뎅탕하고 파전 한 개 주세요'


주문을 끝내고 조금 있으니, 전화를 끝낸 희정이 누나가 들어오더군요. 삐삐 음성 듣고 여기 오기까지 경황이 없었던 탓에 눈여겨보지 못한 누나의 모습. 꿀떡, 침이 넘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릎 위로 제법 올라오는 나풀대는 연두색 치마와 쭉 뻗은 다리, 길이가 짧은 건지 가끔 배꼽까지 보이는 찰싹 붙는 티에 결정적으로 우리 나이대의 여자애들에게선 볼 수 없는 세련된 화장이 묻은, 어른스러워 보이는 누나의 얼굴, 코피가 나올락 말락 한 걸 참는다고 힘들더라고요.


'술 뭐 시켰냐?? '


'소주랑 막걸리 시켰는데 괜찮아??'


'잘했어, 섞어 마시면 되겠다.'


'.'


사이다랑 막걸리 섞어 먹는 건 많이 봤지만, 소주와 막걸리라니. 제가 시키기는 했지만 참 멍청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손님이 없었던 탓인지 몇분 기다리지도 않아 술과 안주가 나왔습니다.


냉큼 막걸리 단지에 소주를 콸콸 쏟아붓는 희정이 누나의 당당한 모습에 옆에서 놀란 토끼 눈을 한 채 알바생이 저를 씩~ 쳐다보더군요. 어찌나 무안하던지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죠.


'맥주도 한 병 주세요.^^'


쿨럭. 거기서 갑자기 왜 맥주 한 병 주시라는 말이 나왔는지.


그 알 수 없이 나온 말 덕에 희정이 누나에게선 '와 이놈 술 좀 먹는가 본데!'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지만, 그 칭찬 한마디와 바꾸기엔 너무 엄청난 <소주:맥주:막걸리=1:1:1>이라는 폭탄주가 제 앞에 완성되어 터지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자~~ 일한다고 고생 많았어. 한잔 쭉 마셔.' 


구성 자체가 좀 이상해서 외계스러운 맛이 나긴 했지만 근 두 달여 만에 먹는 술이라 목구멍을 쭉 타고 넘어가는 맛이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저도 폭탄주 체질?? ㅋㅋ 

 

참고로 얘기하자면 전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질 못한답니다. 소주 1병 정도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구요. 맥주는 1,000cc 정도면 지나가는 사람 옷자락 잡고 늘어질 만하죠.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실험관찰을 통해 연구한 뒤 수첩에다 적어둔 결과입니다. 혹시 까먹을까 봐서.


다시 본론, 누나와 3개월 정도를 같이 일하면서 개인적인 얘기를 해본 적이 없는 데다가 나이 차도 제법 나서 술잔이 좀 오가 기전엔 거참, 분위기 상당히 뻘쭘하더군요. 뭐라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않구.


그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나 봅니다. 술이 약이더군요. 히로시마 급 원폭의 100배 위력은 충분히 가진 폭탄주 2~3잔이 돌고 나니 거의 불알친구 부럽지 않을 정도의 대화 수준이 나옵디다. ㅋㅋㅋ


무쇠 팔 무쇠 다리로 모자라 심장도 무쇠로 만든 것만 같았던 희정이 누나도 결국 이제 갓 스물여섯 살이 된 여자라는 느낌이 왔을 때쯤엔 벌써 폭탄이 두 방이나 터진 뒤였죠. 


맞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전 제 치사량을 훌쩍 넘은 술을 마신 탓에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누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잘도 해가며 번데기 한 조각, 술 한 방울 안 남기고 싹 쓸어 먹더군요.


'저 인간 술 먹여서 어째 한번 해보려고 했다간 초상나겠구먼.'


술집에 들어온 지 2시간쯤 지나자 정말 저승 문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속도 니글니글하고.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기도 하고. 혀도 꼬이고. 콱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이 오는데 금방이라도 상에 꼬꾸라질 지경이었습니다.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누나가 호출이 왔는지 전화하러 나가더군요. 누나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긴장됐던 근육이 일순간 풀리면서 전 완전히 개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정도로 뻗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1:1:1 삼등 비율 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님들께서도 살면서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생기거든 삼등 비율 폭탄주 500cc만 원샷 시켜보시길 바랍니다.


그 정도로 뻗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1:1:1 삼등 비율 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님들께서도 살면서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생기거든 삼등 비율 폭탄주 500cc만 원샷 시켜보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목이 말라비틀어져 가는 느낌에 눈을 떴습니다. 벽 여기저기에 사진이며 액자가 걸려있는 것이 여관방은 아닌 거 같고, 냄새를 비롯한 방 내부의 오염도 측정치를 볼 때 제방도 아닌 거 같고, 대체 여기가 어딘지를 알 수가 없어 점점 불안해지는 순간 방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희정이 누나였습니다. 지방 살아서 자취한다더니 진짠가 보네. 근데 머리가 왜케 아파. 아씨.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그것도 폭탄주를 그렇게 마셔댔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죠. 일단 목부터 축여야겠단 생각으로 침대에서 일어난 저는 방문을 열려다, '우악!!' 놀라움에 엄청난 큰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팬티만 외로이 남아 사나이 정절을 지키고 있고 나머지 옷은 행방불명이었거든요.


'야! 넌 일어났으면 사람을 부르든지 하지 오밤중에 왜 악을 쓰고, 지랄이야!! 응!'


얼떨결에 소릴 지르긴 했는데 좀 컸든지 밖에서 누나가 듣곤 투덜거리더군요.


조금 쪽팔리기도 했지만, 우선은 옷부터 찾아야 했습니다. 타 잔 놀이는 7살 때 졸업한 걸로.


'누나. 내 몸이 보고 싶으면 말로 하지, 왜 옷을 벗겨! 어딨어?? 내 옷??'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곤 다음 순서로 갑자기 뭔가 섬뜩한 기운이 스쳐 가더니 덜컥 방문을 열고 집주인이 등장 하더군요. 무슨 공포영화에서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연상시키시면 될듯합니다.


암튼 전 누나가 들고 있던 베개로 한 삼백육십 다섯 대는 맞은 뒤에야 거실에 빨래가 돼서 걸려있는 제 옷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술 거거 먹고 술 먹었다고 옷에 장식하는 놈, 네가 처음이다. 거기 의자 위에 갈아입을 옷 있으니까 입어'


좀 야박한 구석이 없진 않았지만, 술 취한 놈 안 버리고 여기까지 데리고 와준 것도 고마운데, 오바이트 땜에 엉망이 된 제 옷가지들 빨래까지 해준 누나 맘 씀씀이에 고맙단 생각이 들더군요.


'누나 미안해. 폭탄주만 아니면 이 정도는 아닌데. 진짜 미안'


'미안한 거 알면 됐어. 담에 네가 갚음 되잖아. 그건 그렇고 너 자고 갈 거지??'


컥!! '자고 갈 거지?'라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지금 새벽 2시야. 차도 전부 끊긴 데다 네 옷도 덜 말랐으니까 저쪽 방 가서 자고, 낼 아침에 나 출근할 때 같이 나가자'


그러니까 '자고 갈 거지?'란 말이 따로 잔다는 얘기였군.'그냥 같이 자면 안 돼??' 라고 했다간 맞아 죽을 게 뻔한 스토리라 전 조용히 누나가 가르치는 옆방으로 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이 올 리가 있겠습니까. 3일 굶은 사람한테 진수성찬 앞에 두고 참으라는 것이 차라리 나을듯한 심정이더군요. 고추만 딥다 커집디다.


'그래, 여기까지 온 건데 참는다는 건 대한민국 삼천만 남자들의 자존심을 뭉개는 일이야!'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자위 반, 용기 반을 얻어낸 저는 보무도 당당하게 누나 방 앞에 섰습니다.


문이 잠겼더군요. 잠겨있는 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 20분 서성거리다 지쳐버린 저는 섭섭한 심정 감출 길이 없어 한숨 한번 푹 내쉬고 돌아서는데' 흑흑. 훌쩍. 흑흑.'


뜻밖에 누나 방안에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리둥절, 당황! 뭐라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당혹한 순간이었지만, 그냥 지나갈 순 없는 일이더라고요.


'누나 왜 그래 울어?? 어? 지금 우는 거지?'


'. '


'왜? 어디 아파?? 뭔 일인데 그렇게 서럽게 울어? 말 좀 해봐'


'안 잤냐?'


'어. 어. 목말라서 물 좀 마시려고. 물 어딨어?'


'응. 냉장고 안에 물 있어. 먹고 제빨리 자. 나 별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뭐라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본인이 괜찮다는데 계속 말 시키는 것도 할 짓은 아닌 거 같아 자고 있던 방으로 돌아와 말똥말똥 눈을 뜬 채 잠을 청해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그렇게 뜬눈으로 어둠 적응 훈련을 한 시간 남짓 받았으려나, 갑자기 누나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나가 제 방문 앞에 멈춰 서는 소리가 들립니다.


'야! 너 자냐?'


'.'(자라고 해놓고. 묻는 건 또 뭐야)


'자냐??'


'응? 아니. 누나 나 안자. 왜??'


'잠깐 들어가도돼…?'어어. 들어와. 괜찮아.'


새벽에 남자는 방에 제 발로 찾아든 여자! 뻔한 스토리다 싶으시겠지만, 뜻밖에도 누나는 눈물로 얼굴이 범벅된 상태였습니다. 


'야! 내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누나 딱 5분만 안아주면 안 되겠냐?? 부탁할게!'


부탁이라니!! 내가 부탁해도 시원찮아할 판인데.


'어. 거야 뭐. 근데 무슨 일??'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벽에 기대앉은 제 가슴으로 누나가 안겨 왔습니다.


오!! 나이스!! 이게 웬 떡이라는 기분은 잠시, 품속에서 누나의 심한 떨림이 전해져 오더군요, 그때의 그 측은함이란.


아무리 제가 짐승 같은 놈이긴 하지만 그 상황에서 허튼 짓거리를 한다는 건 좀 아니다 싶었습니다. 전 마땅히 위로해 줄 말도 생각나지 않아 그냥 두 팔로 다독거려줄 수밖에 없었죠.


'미안하다. 자는 거 다 깨웠지?'


'아냐. 근데 누나 왜 우는 건데?? 진짜 실연당한 거야?? 응??'


'어. 실연 그 말이 맞겠다.'


이런 바보 같은 놈. 위로는 못 해줄망정 오히려 아픈 상처에 소금 뿌린 꼴이 돼버렸습니다.


'누나 미안. 내가 말실수했네.'


'아니, 괜찮다. 네가 날 찬 것도 아니고. '


'그래도 그게 아니잖아.'


'그래?? 그럼 사과하는 의미에서 누나 이야기기 좀 들어줄래?? 나 하소연할 데가 없다. 얘기하면 좀 풀릴 거 같아서.'


그렇게 시작된 누나의 이야기는 약간 충격적이면서도 남자인 제가 남자를 혐오하게끔 만들기에 충분한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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