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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부부들 - 제 24화


2026.05.09 조회수 339,679회


 


두 번을 쓰리 섬. 첫 번째는 정말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아, 물론 다른 의미로. 주혁과 함께 아내인 수잔나를 범할 때, 그의 현란한 손놀림과 애무에 그녀가 쉽게 몸을 내어주던 장면이 떠올랐다. 



육봉이야 내 것이 더 크고 굵었고, 수잔나도 나랑 할 때가 더 좋았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먼저 시작한 여정, 우리 넷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달리는 열차에 올라탄 것이나 다름없었다. 후회해야 이미 늦었고, 그렇다고 없던 일로 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이 열차에서 모두 뛰어내리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이 흐름을 돌이킬 수 없었다. 그 끝에는 뭐가 자리하고 있을 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아내인 수잔나와의 결혼 생활을 지켜야 밀애도, 우리 넷의 관계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할 것 같았다. 이 말도 안 되는 관계의 순기능이라고 할까? 요 몇 년 동안 틈만 나면 술이나 처마실 줄 알았지, 운동을 오래 안 하다 보니 팔뚝이고, 허벅지고, 근육이 안 빠진 데가 없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던 덤벨을 꺼내 닦고, 종합 비타민, 영양제도 구매했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했다.



* * *



이 상황을 엘리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어리석게도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은 정선 여행을 다녀오고 몇 주가 흐른 뒤였다. 벌써 물어봐야 했는데, 내가 이 관계에 주도권을 쥐겠다는 생각, 아내인 수잔나가 어떻게든 주혁에게 마음까지 주는 건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잊고 있었다.



가슴이 착잡해져 오는데, 감수 팀장이 나를 불렀다.



“경률씨.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네? 아, 네.”



우리 둘은 사무실 밖 흡연구역으로 갔다. 그가 씩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뭔가 좋은 소식이 있는 것 같았다.



“저번에 말했던 그 사람 있지. 엘리나인가?”



“네.”



“내일 혹시 면접 보러 올 수 있는지 한 번 물어봐.”



“진짜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난번에 채용할 의사가 없다고 했을 때, 안되나 싶었는데, 운영부장하고 이야기 잘 된 모양이었다.



“응. 제임스가 일이 생겨서 급하게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봐. 당장 다음 주부터 원어민 감수자 한 명이 비어.”



“알겠습니다.”



퇴근 후에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엘리나와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여보세요?”



“응, 경률.”



“좋은 소식이 있어.”



“뭔데?”



“우리 회사 감수팀에 곧 한 자리 날 것 같아. 회사에서 너, 내일 한 번 오라는데? 면접 보러...”



“와!”



수화기 너머로 엘리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이력서 포함해서 필요한 서류가 몇 개 있어. 뭐 챙겨야 하는지는 카톡으로 알려줄게.”



“정말 고마워. 안 그래도 요즘 일이 없어서 생활하는 게 불안불안했는데, 잘 됐다.”



전화를 끊고서, 엘리나가 챙겨야 할 서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엘리나가 안정적인 일을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아내인 수잔나에게 바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수잔나는 식탁에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왔어? 수고했어.”



“응. 맞다, 여보. 좋은 소식이 있어.”



“뭔데?”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입술을 깨물다가 말을 꺼냈다.



“저기, 우리 회사 감수팀에 한 자리가 날 거 같아. 그래서 엘리나, 내일 면접 보러 올 거야.”



그 말이 끝나자, 수잔나의 얼굴이 굳었다. 작은 정적이 흘렀다.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더니,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래?”



“?”



“그때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그렇게 되네...”



이 반응은 뭐지?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그래? 당신도 알잖아. 우리 다 같이 있을 때 내가 먼저...”



“알아.”



그녀가 내 말을 끊고는 자기가 할 말을 이어갔다.



“근데, 걔가 진짜로 당신이랑 같이 일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그래.”



“그게 어때서?”



“한 회사에 같이 다닌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편하진 않아.”



“왜?”



나도 기분이 상했고, 그때부터 말투가 변하기 시작했다. 수잔나는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말했다.



“솔직히, 일자리는 엘리나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니야? 근데 왜 당신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 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가 얼마나 자주 만나고 가까운 사이인데,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이상해.”



단호한 목소리였다.



“내가 보기엔 그래... 친구라고 해도 도울 게 있고, 아닌 게 있는 거야. 그리고, 당신이 엘리나를 도와주는 방식이 그냥 친구로서의 선을 넘는 것처럼 보여.”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언젠가는 이런 대화를 할 순간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하...”



말문이 막혀서 한숨을 내뱉는데, 수잔나는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거 같았다.



“우리 지난번에 합의했잖아. 함께 만나서 성욕은 풀어도, 마음만은 주지 말자고... 근데, 당신이 엘리나한테 하는 거 보면 그게 아닌 거 같아.”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그거랑 이거랑 같아?”



“뭐가 달라?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는 게 보이는데?”



“......”



아내인 수잔나는 마침내 일어서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눈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이 상황이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 저렇게 갑자기 급발진하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고서 차분히 말했다.



“그래, 당신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이해해. 근데, 엘리나 걔가 한국에서 뭘 할 수 있어? 할 줄 아는 거 영어밖에 없는 애가?”



“그건 걔네 사정이지, 왜 당신이 그렇게 돕고 나서냐고! 내 말뜻 모르겠어?”



“뭐야 당신? 언제부터 그렇게 이기적이었어?”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마치 가슴 안쪽 어딘가가 서늘하게 식어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침묵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미안해, 여보.”



“뭐가?”



“괜히 오해하게 만들어서.”



아내인 수잔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은 지키자고 했잖아. 그것도 당신이 먼저 한 말이야.”



“그래.”



아내인 수잔나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정말 선은 지키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진실 여부가 아니라, 우리 관계를 이어갈 최소한의 숨구멍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내가 너무 앞서갔네.”



아내인 수잔나는 내 품 안에서 한참을 침묵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면접까지 보기로 했다면서? 이제 와서 내가 막을 수도 없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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