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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부부들 - 제 31화


2026.05.10 조회수 315,731회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내인 수잔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수잔나가 잠이 들었을 때, 다시 몰래 그녀의 노트북을 켜서 PC 버전 카톡을 확인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한국어-영어 질문 몇 개, 그리고 가벼운 농담 몇 마디.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대화를 가만히 읽어보니, 일부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지운 티가 났다. 문맥상의 흐름이 군데군데 끊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후에도 우리의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집에 오면 먼저 와 있던 사람이 늘 반갑게 인사를 했고, 서로 입맞춤하고.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그날 하루의 안부를 묻고. 



그런데, 그 익숙함 사이로 드문드문 낯선 느낌과 불편함이 스며들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덧 또다시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새해 인사를 주고받으며, 기분 좋게 회사를 나섰다. 엘리나와 함께 회사 입구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벌써 올해도 다 갔네. 참, 시간 빠르다.”



내가 먼저 운을 띄웠다.



“그러게... 이렇게 또 한 살 먹네. 아휴...”



“.......”



“고향에 계신 부모님하고 동생은 잘 있는지 모르겠어.”



엘리나의 눈빛에는 그리움이 젖어 있었다.



“이맘때면 고향 생각 많이 나지?”



그녀는 말없이 빙긋 웃기만 할 뿐이다.



“1월 중순쯤에는 회사가 많이 한가해질 거야. 그때, 주혁이랑 호주에 한 번 다녀 와.”



“정말?”



“그래. 우리 회사, 휴가 쓰는 거 가지고 눈치 주고 그러지 않아.”



“생각해 볼게. 고마워.”



슬슬 각자의 집으로 갈 시간, 휴대폰으로 시계를 바라보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뭐할 거야? 올해의 마지막 날인데...”



“안 그래도 타종식과 제야의 밤 행사 보러 종각이나 갈까 해.”



“그래. 조심하고...”



“알았어.”



“너도 조심해서 집에 들어가고. 새해 복 많이 받고, 내년에 보자.”



“저기, 경률아...”



차로 가려던 순간,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응?”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내 입술에 온기가 퍼졌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그녀가 웃으며 인사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나는 수줍게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똑같이 입맞춤하고서 인사를 건넸다.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를 보면서 기분 좋게 차에 오른다.



돌이켜보니 올해 연말에는 참으로 좋은 일들이 많았다. 이 기세가 내년에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나와 수잔나는 해돋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고, 기꺼이 동의했다. 다소 즉흥적으로 계획한 여정이라 숙소 예약을 못 해서 차박을 해야만 했지만 괜찮았다.



밤 9시... 새해를 맞이하러 가는 인파들로 도로는 벌써 붐빈다. 고속도로로 접어드니 이내 차는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간다. 음악을 들으며 손가락을 운전대 위에서 까딱거리고 있는데, 음악이 멈추고 전화벨이 울렸다.



대시보드 화면에 선명하게 뜬 이름, 엘리나.



나는 반사적으로 수잔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도 화면을 본 듯, 잠시 멈칫하더니 나를 바라봤다. 이 시간에 얘가 왜 전화를 하냐는 표정이었다. 당황해서 화면만 보고 있는데, 그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받아?”



나는 말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 여보세요?”



그리고 바로 들려온 건, 흐느끼는 말소리였다.



“겨, 경률아... 흐윽, 흑...”



순간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확 들어간다. 수잔나도 깜짝 놀라 내게 몸을 돌렸다.



“엘리나, 왜 그래? 왜 울어?”



“어, 어디야 지금?”



“나 지금 포항 가고 있어. 무슨 일이야?”



“주혁이가 나 두고 집 나갔어.”



나는 수잔나를 바라보고서는 대시 보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만 찬찬히 말해 봐. 주혁이가 집을 나가다니?”



최대한 침착하려 했지만, 내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였다.



“내가 시내 가서 타종식과 제야의 밤 행사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주혁이는 피곤해서 가기 싫다고.... 그러다가 싸웠어. 흑흑.”



누구나 흔히 일어날 법한 작은 다툼, 하지만 지금의 엘리나는 그 사소한 것조차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감정이 터져버린 상태였다.



나는 핸들을 꾹 쥔 채,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지금 그럼 혼자겠네?”



“응. 흑흑...”



그때 수잔나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나를 외면했다.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내 표정, 목소리를 통해 내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이미 간파한 듯했다.



“어떡하지?”



나는 엘리나가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엘리나, 저렇게 혼자 두기에는 좀 그런데... 우리가 데리러 갈까?”



수잔나의 입에서는 작은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말하지 않아도 많은 감정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황, 실망, 그리고 짜증까지...



지난번 엘리나의 취직 문제를 도와 그녀를 우리 회사에 들어오게 했을 때, 수잔나는 이미 내가 한 번 경계를 넘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또 같은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다.



나는 앞차의 번호판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냥 내 일 아니라는 듯, 단순한 위로 한마디 건네고 우리 갈 길을 가면 될 것을 엘리나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마음이 흔들려 버렸다.



“엘리나,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다시 잔화할게.”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은 전화를 끊었다. 왠지 우리 해돋이 여행도 틀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주혁한테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들렸다. 하지만 한참 신호가 가다가 들리는 소리....



‘지금은 전화받을 수 없습니다. '삐' 소리 이후.......’



“이 새끼 뭐 하고 있는 거야.”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신호음 몇 번 가고 나서 바로 연결됐다.



“네, 형님!”



술 냄새가 풍기는 밝은 목소리. 이 상황을 전혀 모르는 톤에 짜증이 났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낮게 말했다.



“너 어디냐?”



“친구들이랑 술 한잔하러 나왔어요. 이따가 물 좋은 데 가려고요. 형님도 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옆자리의 수잔나를 보며 짧게 경고했다.



“야, 말조심해. 지금 나 수잔나랑 같이 있어.”



그 말을 들은 주혁의 목소리가 바로 풀이 죽었다.



“아, 네...”



더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 혹시 엘리나랑 싸우고, 혼자 나갔냐?”



“네? 형님이 그걸 어떻게... 엘리나가 말하던가요?”



내 목소리는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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