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살짝 뜨니, 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어젯밤 일 때문인지...
고개를 돌리니 엘리나가 내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평온한 얼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이다.
속이 울렁거려 더 누워있긴 힘들었다.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나와, 주방으로 가는데, 굳게 닫힌 안방 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쟤들, 깨워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안방 문을 벌컥 열었다. 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불을 턱 아래까지 덮은 채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와... 아주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야! 일어나!”
수잔나가 흠칫하며 눈을 뜨자, 주혁도 벌떡 일어났다.
“아, 형님...”
“간밤에 좋던?”
“.......”
딱 봐도 둘 다 아랫도리에 아무것도 안 걸치고 있는 거 같아서 나는 한 마디 던지고 돌아섰다.
“정신들 차려. 아침 먹어야지.”
해장라면이 당겼다.수잔나와 엘리나를 위해서는 햄버거 세트를 두 개 주문했다. 라면이 거의 완성될 무렵, 엘리나도 졸린 얼굴로 걸어 나왔다.
햄버거가 도착하고, 뒤이어 라면 두 그릇도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국물을 한 숟갈 뜨는 순간 주혁의 표정이 확 풀렸다.
“아, 살 것 같다. 고맙습니다. 형님.”
“천천히 먹어라. 김치 여기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해장을 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엘리나는 집에 갈 준비를 하고, 나는 주혁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어젯밤의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주혁과 엘리나는 욕실에서 간단히 씻고 나와서 옷을 차려입었다. 문 앞에서 인사하는 두 사람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는 거 같았다. 어젯밤의 일은 잠시 잊은 채, 그냥 편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집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수잔나와 함께 소파로 와서 앉았다.
“자, 이제 말해보자.”
“뭘?”
“어젯밤. 어땠어? 솔직하게.”
수잔나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손가락 끝을 만지작거리고, 무릎 위에서 손을 몇 번이고 모았다 풀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엔 기분이 좀 복잡했어. 근데, 하다 보니까 좋았어.”
“나랑 할 때보다도 더?”
“그건 아니야. 당신이랑 하는 게 더 좋아. 근데, 어젯밤에도 즐겁긴 했어.”
나는 짧게 숨을 내쉬며 뒤로 기대었다. 예상한 답이지만, 막상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질투인지, 흥분인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인지, 알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그리고 문득, 자연스럽게 다음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다음엔 좀 다른 스릴을 느껴볼까?”
수잔나는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뭐야, 당신 완전 고삐 풀렸네? 그래, 뭔데?”
“기다려. 좀 있으면 알게 될 거야.”
* * *
금요일. 나는 엘리나와 약속을 잡았다. 오늘 마침 일도 제시간에 끝났겠다, 오후에 시간이 많았다. 집에 오니 6시도 안 됐다. 1층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엘리나가 반갑게 다가와서 키스했다.
“무슨 일인데, 주혁이 없이 나 혼자 불러냈어?”
“들어가자. 가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
자연스럽게 엘리나의 팔짱을 꼈다. 하지만 그녀가 멈칫하며 팔을 뺐다.
“아잇, 아무리 그래도 너희 집 앞인데.”
“뭐, 어때. 부부 교환까지 했는데, 이게 대수야?”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서 차 한 잔씩 마시고 있는데, 퇴근한 수잔나가 집으로 들어왔다.
‘나, 왔어’라고 인사를 하던 그녀의 시선이 우리 둘에게 멈춰 섰다.
“어? 엘리나.”
“왔어? 수고했어.”
“.......”
당연한 반응이겠지. 수잔나는 말을 잃었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어. 괜찮아. 씻고 와. 같이 밥 먹자.”
“어......”
수잔나는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나는 욕실 문만 빤히 보고 있는데, 엘리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경률아.”
“응?”
“솔직히 우리 둘 중에 누구랑 하는 게 더 좋아?”
아뿔싸. 수잔나에게 했던 질문을 내가 받을 줄이야. 당연히 나도 그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왜 모르고 있었을까?
“그게, 딱 너 아니면 수잔나다라고 딱 잘라서 말 못 하겠어. 솔직히 말하면 밑에 구멍은 수잔나가 더 좁은데, 가슴은 네가 더 크고... 그리고 발가락은 네 것이 더 맛있어. 풉.”
말하고 보니,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엘리나는 수잔나가 들을세라 입을 막고 킥킥 웃어댔다. 다행히 잘 넘어간 것 같다.
우리 셋은 저녁으로 피자를 시켜 먹었다. 오늘 밤만큼은 술을 안 마시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맨정신으로는 못 하겠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행위이기도 하고...
저녁을 먹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뛰었다. 그리고 그게 될지, 안 될지도 몰랐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먹다 남은 위스키를 가져와, 세 사람과 함께 모두 비워버렸다. 술을 마시니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그리고, 내 좆도 뜨겁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