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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여인 - 1


2026.05.07 조회수 621,710회


 


그 오솔길은 큰길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오솔길에 불현듯 호기심이 생겼다. ‘저 오솔길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그런 호기심이었다. 



나는 그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솔길은 좁았고, 양옆에는 숱이 우거져 있었다. 숱은 막 단풍을 시작하는지 울긋불긋한 색깔을 머금고 가을을 속삭이고 있었다. 



한 십 분쯤 걸었을 때였다. 족히 수십 그루의 나무를 쳐낸 듯싶은 공터가 나왔고 그 공터에는 겨우 흉물을 면한 콘크리트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에는 ‘라면’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간판 집에서 제작하여 붙인 간판은 아닌 듯했다. 서툰 글씨체가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빛바랜 페인트칠의 밀문을 열고 그 건물 안에 들어서자 칠팔 평 남짓의 홀이 나를 맞이했다. 탁자 서넛이 그 건물이 식당임을 유일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 탁자들 한 가운데에 난로가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지난해 설치해 놓고는 주인의 게으름으로 봄과 여름이 지나도록 치워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난로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 럭비공보다 클까 말까 한 크기였다. 



나는 탁자의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식물이라곤 없었다. 식당이라면 으레 붙어있기 마련인 소주 회사 포스터 한 장 붙어있지 않았다. 



하얀 페인트칠을 한 사방 벽에는 온통 낙서였다. 주인이 벽에 하얀 페인트칠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 낙서 한 가운데에 메뉴를 써넣은 두 장의 종이가 붙어있었다. 



한 장의 종이에는 ‘호호라면’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나머지 한 장에는 ‘그냥라면’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냥라면’이라면 말 그대로 그냥 라면일 터였고 ‘호호라면’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잠시 후 홀 모서리의 조그만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 가게의 주인이었다. 멜빵의 바지를 입고 목이 긴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대단한 거구였다. 그리고 배가 좀 심하다 싶을 만큼 나와 있었다. 



그 멜빵 아저씨는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었다. 멜빵 아저씨의 거구와 럭비공만큼 한 쪼끄만 난로가 주는 언밸런스... 그 언밸런스는 나에게 묘한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라면 먹을 거야?” 

 


멜빵 아저씨는 스스럼없이 그렇게 반말지거리였다. 그 반말지거리 역시 나에게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예, 호호라면으로 해 주세요.”



“혼자 오는 사람에게 호호라면은 안 팔아. 그냥라면 먹어.”

 


나는 ‘그냥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죠?.”



“이천 원이야.”



“예? 왜 그렇게 비싸요? 자장면도 천 원 밖에 하지 않는데...”



“호호라면은 싸... 천 원이야...”

 


나는 라면값을 치르고 벽 한쪽에 낙서를 했다.

 


‘젠장, 호호라면은 팔지도 않고, 난로는 쇠 부랄 보다도 작고, 주인아저씬 고릴라 몸집보다 크고, 그러나 담에 또 올 거야.’


 

그런 낙서를 남긴 나는 다시 오솔길을 걸었다. 또 십여 분 걸었을 때였다. 오솔길 옆의 나무 둥지에 붙은 작은 푯말이 내 눈에 뜨였다.



그 푯말에는 ‘강변 찻집’ 이라는 예쁜 글씨가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화살표와 함께 ‘500m만 더 걸으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예쁜 글씨와 문구의 어휘가 그 푯말을 붙인 사람이 여성임을 단번에 알아보게 했다.



‘이 오솔길의 끝이 여성이 하는 찻집이라... 괜찮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백 미터를 걷기 시작했다. 



그 오백 미터를 삼사십 미터 남겨두었을 때 숲 사이로 어떤 물체가 보였다. 조금 더 다가갔다. 그 물체는 ‘강변 찻집’ 건물이었다. 목조로 지은 아주 아담한 건물이었다. 



‘숲속 강변의 찻집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내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는 ‘유모레스크’의 바이올우리는 선율이었다.

 


유모레스크(Humoresque)는 기악 연주의 한 형식인데 드보르의 7번 유모레스크가 워낙 유명해서 아주 많은 사람은 유모레스크가 드보르 작곡 음악의 제목인 줄 알고 있다. 원래는 피아노곡이었으나 바이올우리는 연주가 아주 일품이다. 



나는 그날의 감흥을 잊지 못하여 유모레스크를 지금도 나의 휴대폰 컬러링으로 쓰고 있다.



‘강변 찻집’의 마당은 잔디가 깔려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잎이 무성한 나무들로 울타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 탁자들이 있었고 나무 둥지에는 스피커가 달려있었다. ‘유모레스크’는 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 탁자에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한 여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커피 드릴까요?” 



“커피 말고 다른 차는?”



“저희 집엔 커피와 우유 밖에 없는데...”



“예, 좋아요... 커피 주세요.”

 


그런데 그 여인의 얼굴이나 인상은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어디서 많이 대하던 얼굴이었고 숱하게 머릿속에 그리던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얼굴 그 인상을 언제 어떻게 마주해 봤는지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다만 그때가 가을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녀의 인상에 가을 내음이 아주 짙게 풍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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